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의 형은 저자에게 있어 부모와도 비슷한 존재였다.
나이차는 크지 않았지만 형은 소위 말하는 '영재'였던 것 같다. 형은 초등학교때 이미 중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나중에 실제로 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이 "아~ ㅇㅇ의 동생이라구?" 라고 하는 그런..
하지만 형은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고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암투병을 하며 결국 저자는 본인의 결혼식 대신 형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형을 잃고 방황하며 잘나가던 직장(뉴요커)을 때려치고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적은 일기같은 글이다. 미술사를 공부하셨던 저자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어릴때부터 미술관에 자주 데리고가셨고, 그것이 나중에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시기에 미술관이 도피처가 될 수 있다니 이거 하나만으로도 '성공한 육아'가 아닐까.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살고있었는데 세상에는 좋은 직업들이 많은 것 같다.
미술관의 경비원도 그렇고(하루종일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니! 그러고도 돈을 받다니!)
축구 경기의 심판도 그렇고(홀란의 슛팅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러고도 돈을 받다니!)
책의 편집자도 그렇고(하루종일 책만 읽다니! 그러고도 돈을 받다니!)
물론 이것들은 나의 무지한 생각들이고 내가 알지못하는 고충들이 다 있겠지
어렸을땐(20대...)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직업,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직업관이 많이 바뀌었다.
재미 / 배움 / 많은 돈
요즘 나의 생각은 이 셋 중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좋은 직업이 아닌가 싶다.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은 재미와 배움 두 가지나 있으니 정말로 좋은 직업이다.
(재미도 없고, 배우는 것도 없다면 바짝 일해서 돈이라도...ㅎㅎ)
미국에서 지낼 때 왜 메트로폴리탄에 자주 방문하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어느날은 Courbet(/꾸-ㅎ베/ 프랑스 화가이다..ㅋ)의 특별전시가 있었는데
그림들이 너무 멋있어서 Courbet의 두꺼운 책도 한권 사들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어린 나에게는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전혀 주저없이 덜컥 사버림)
그림에 압도당하는 그런 기분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와!!!!!! 멋있다!!!!!!!!!!!'
지금도 책장 한켠에 있는데 여전히 그림들만 보고 글은 읽지 않고있지만
그 당시 강렬했던 느낌 때문에 아직도 나에게는 '메트로폴리탄=Courbet'이다.
다시 한 번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하여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래는 내가 밑줄친 부분들 ----------------------------------------------------------------------------------------------------------------------
그게 그 아파트에서 형의 모습이었다. 병을 앓고 있지만 그 상황에 익숙해져서 생기는 평화로움에 우리도 젖어 있었다.
(형)"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어머니는 잠이 든 아들을 보고, 나를 보고, 새벽빛을 보고, 아픈 몸을 보고, 그 끔찍함을 보고, 그 우아함을 보았다.
"우리 좀 봐" 어머니가 말했다. "봐,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런 그림이잖아."
보통 나는 중국어 구절에 시간을 전혀 할애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음,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자를 읽을 줄 모르는 덕을 본다. 단 하나의 획도 언어적인 의미에 빠져 놓치지 않고 이 화려하고 다양한 문자들이 펼치는 시각적 향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획이 나른한 뱀처럼 나아가면 다음 획은 신속하고 격렬하게 연이어 찌르는 듯한 모양새다. 이 두 극단 사이의 모든 가능성이 지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각각의 문자가 남기는 조금씩 다른 인상에 주목하면서 하나에서 또 다음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말로 형용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또 너무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들이다. 이런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각적인 경험이 언어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지 깨닫는다. 서예가들의 기술과 관록은 예술 행위의 가장 근원적인 충동을 고도의 기교를 통해 보여준다. 빈 표면에 짙은 자국을 남겨 그것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은 그런 충동 말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여덟 시간 동안이나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도 상대방 이름을 모르고 헤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비원이 너무 많아서 손을 내밀고 "우리 천 번쯤 본 거 같은데, 내 이름은 패트릭이에요"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무작위로 배정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일대일 대화를 수백 번 한 다음에도 딱히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비원들도 제법 있다.
최고의 대화 요령은 질문, 그중에서도 기나긴 대답이 필요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일단 대답하기 시작하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저 아이들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로저스 펀드".
메트는 기증, 유증, 구매를 통해 작품을 취득하는데 제이콥 S.로저스 만큼 메트의 구매력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기관차 제조업자였던 로저스는 토머스 제퍼슨이 살아 있던 1824년에 태어나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나기 한 달 전인 1901년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짧은 역사를 다시 실감한다. 메자닌의 컴퓨터 포털에서 검색한 내용에 의하면 로저스의 이름은 아메리카관에서만 1500개 이상의 유물에 붙어 있다. 포장마차 수리를 위한 18세기 기중기? 로저스 펀드. 1879년에 티파니사에서 만든 은쟁반? 로저스 펀드.
사실 로저스는 예술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생전에 메트에 나타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의 뜻에 따라) 장례식도 없이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일어난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이유로, 성질 고약한 괴짜 로저스는 그의 유일한 가족을 상속 대상에서 제외했고(몇 안되는 조카들만 약간의 생활비를 받았다) 5백만 달러의 재산을 메트 앞으로 남겼다.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순식간에 기금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막중한 일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로저스의 돈에 붙는 이자는 메트의 경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모든 건 그의 오기 혹은 변덕 그리고 물론 대륙을 가로지르며 연기를 내뿜었던 강철 전차들 덕분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출산 및 육아휴직 후 복직한 첫 날)늦은 오후로 접어들 무렵이 되자 에너지는 탈탈 털리고 여기저기가 쑤셔왔지만, 아이를 돌볼 때 오는 미친 듯한 기진맥진의 상태가 아니라 기분 좋은 단순한 피로감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게 내 삶이군' 나는 생각한다.
이제야 알고 보니 아이의 성격은 주사위 던지기처럼 우연히 얻어걸리는 것이고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했던 것은 올리버만의 본성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바닥에 엎드려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장난감 기차 놀이를 한다. 아이들을 재우는 것은 일련의 교착 상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올리를 씻기기 위해 싸우고, 침대에 눕히기 위해 싸우고, 눈을 감도록 하기 위해 싸운 끝에 겨우 쟁취한 승리마저 절대 최종적인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 과정 내내 루이스는 엄마의 품을 거의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