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재미있어 보여서 빌려와 집에서 읽고 있는데
신랑이 '어??'하며 반가워한다. 평소 좋아하는 학자라고.
나는 처음 들어본 저자인데 유명하신 분인가보다.
서울 시내 자주 지나치던 곳인데 그 장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지금의 송파구 일대에 있는 백제시대 유적지 풍납 토성.
땅을 깊이 파지 않다가, 고층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면서 발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토마손' 개념도 흥미로웠다. 구조가 변경되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건축물의 일부를 뜻하는 일본어이다.
실제 일본의 한 야구선수 이름이었다고 한다. 비싼 돈 주고 외국에서 모셔왔는데 기대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쓸모없어졌다고..
개발하는 지역에서 유물이 나오면, 땅 주인과 건설회사가 발굴비용을 대고 개발을 중단해야한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법이..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익숙한 동네가 나오면 혼자서 반가워함.ㅎㅎ
어느 한국학 연구자의 <강남은 서울이 아니다. 사대문 안 만이 진정한 서울이다>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선입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조선 후기 중심주의
2) 사대문 안 중심주의
3) 왕족, 양반 중심주의
4) 주자학 중심주의
5) 남성 중심주의
풍납 토성 안쪽에는 백제 시대 이래로 4미터 정도의 흙이 쌓여 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물을 지어서는 4미터 아래의 <백제 문화층>, 그러니까 백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층 아파트를 짓게 되면 토대 공사를 하면서 백제 시대의 유적을 파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풍납 토성 안쪽의 고층 아파트를 볼 때마다 저는 착잡한 심정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사사키 선생에게 말하자, 선생은 뜻밖의 답을 했습니다. <백제의 첫 왕성이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이처럼 파괴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백제 시대의 왕성, 조선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서민 동네, 현대의 고층 아파트, 이 세 개의 시대가 이렇게 한곳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땅값 비싼 강남에서, 백제왕이 살던 곳도 아닌, 이미 그 흔적이 거의 사라져 버린 성을 복원하자고 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그저, 서울 시민들이 이곳에 삼성동 토성이라는 백제의 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간신히 남겨진 흔적이나마 파괴하지 말자는 공감대를 만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중심으로 서울을 보는 관점이 현대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면서, 서울 속의 백제는 무관심 속에 파괴되어 갔습니다. ... 서울의 백제 유적이 바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걸으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아쉬워하는 대신, 옛것이 가고 새로운 것이 오는 변화를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을 저는 지난 40여 년에 걸쳐 깨달았습니다. 바뀐다는 것은 서울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잠실) 단지 배치 계획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청천벽력 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박 대통령이 <주택공사가 잠실에 짓는 아파트는 서울 시민의 각 소득 계층에 맞추어 저소득, 중소득층이 골고루 입주할 수 있도록 하라. 국민의 주생활을 호화롭게 하는 데 주택공사가 앞장서지 마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토마손'은 일본에서 발견된 개념으로, 그것이 왜 거기 있어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거나 이미 그 이유가 사라져 버렸지만, 무의미하고 아름답게 부동산에 붙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저는 사대문 남쪽 지역을 답사할 때,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 앞 광장에서 출발해서 산기슭을 내려가는 코스를 주로 선택합니다. 이렇게 걸어야 힘이 덜 드는 답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코스는 안중근 기념관에서 시작해서 옛 중앙정보부 터를 지나 명동까지 걷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 시기에 만들어진 건물과 공간들이 귀히 여겨지지 않아서 툭하면 헐려 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 왕조의 유적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작되는 최근 움직임이 한탄스럽습니다.
충칭에서, 미얀마에서 죽어간 간 광복군들을 생각할 때마다, 식민지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해야 했다는 일부 사람들의 변명에 동의할 수 없게 됩니다. ... 세상은 선과 악, 빛과 어둠, 흑과 백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과 백 사이의 회색 지대 어딘가를 살아갑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색 지대에 남아 있을 때, 목숨을 걸고 빛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 공업 지대로서 발전한 영등포는 1936년에 경성에 편입됩니다. 그 후 영등포, 노량진, 흑석동은 <강남>이라 불리게 됩니다. ... 이처럼 영등포, 노량진, 명수대, 상도 지역이 강남이었으니, 오늘날의 강남은 영등포의 동쪽이라고 해서 영동이라고 불렸지요.
제가 은평 뉴타운에서 문제의식을 갖는 대상은, 뉴타운 한쪽에 들어선 은평 한옥 마을과 은평 역사 한옥 박물관입니다. ... 과연 삼남 지역의 기와집만 한옥입니까? 초가집은 한옥이 아닌가요? 20세기에 만들어진 북촌의 개량 한옥은? 뗏집은? 너와집은? 또는, 가난한 한국 시민들이 만든 토막집은? 하코방은?
최소한 은평 뉴타운에 들어서는 박물관이라면,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시민과는 아무 관계 없는 삼남 지역의 양반집 한옥들을 전시하는 대신, 옛 서울 땅에 묻혔던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어야 합니다.
개발하는 지역에서 유물 유적이 나오면 그 땅의 소유주와 건설 회사가 발굴 비용을 대야 하고, 그 유물 유적이 문화재로 인정되면 개발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풍납 토성 내의 경당 지구도 결국 개발이 중단되고 역사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대부분의 유물 유적은 파괴되고 묻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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