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도스토옙스키만이 내게 가르침을 주는 유일한 심리학자다. 그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by 프리드리히 니체


도서관을 둘러보다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발견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책 역시 보자마자 주저없이 빌려왔다.
이 책은 무려 도스토옙스키의 첫 소설이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때는 이름이 어렵다.
게다가 자주 애칭으로 바뀌어서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표크롭스키'가 '페텐카'로 나오다가 갑자기 '페트루샤'로 나온다.
그 어떤 설명이 없어서 그냥 소리가 비슷하거나 문맥으로 동일인물임을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도입부터 편지로 시작한다!
전체 내용은 마카르(남자 주인공)와 바렌카(여자 주인공)이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되어있다.
(일부 바렌카가 과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 있는데 진짜 젊은 여성이 쓴 것 처럼 섬세하다.)
제목에서 드러난바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가난'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 마카르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혹시 누가 자기 말을 하지는 않는지 귀를 곤두세우며..)
예전에 한 심리학 도서에서 자존감이 낮을수록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높은 가치를 둔다고 했다.
마카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지만,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
단순 상관관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있는건 아닐까.
또 마카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자들은
돈을 거저 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구경한 대가로 돈을 지불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너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며
자녀로 하여금 아프리카 동갑내기 어린이에게 매달 돈을 보내도록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통찰력!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또 다른 포인트는 멋드러진 비유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처럼'과 같은 비유는 완전 참신하면서도 또 완전하게 설명이 된다!
오늘 나는 관청에서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얼굴이 화끈거린 나머지, 마치 곰 새끼나 털 뽑힌 참새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구멍 난 주머니 속에 수치심을 감춘 뒤 표트르 페트로비치에게로 향했습니다. 나는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희망에 차 있었지만 정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였습니다. 모든 감정이 뒤범벅돼 있었죠.
최근에 나는 누구의 얼굴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늘도 몸을 숙이고 고슴도치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데, 예핌 아키모비치가 모두 들으라는 듯이 "이봐,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앉아 있나"하고 말하며 우거지상을 지어 보이더군요.
복도에서 나를 만나자 그는 내 두 손을 잡고 똑바로 쳐다보더군요.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와 악수만 하고 물러가며 그는 줄곧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답답한 것이,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묘한 웃음이었습니다.
한때 '톨스토이' 작품들을 한창 읽으면서
러시아어를 배워서 원서를 읽어보고 싶다! 모스크바를 여행해봐야지! 크렘린궁에 가봐야지! 했는데
시국이 흉흉하여 러시아 여행은 요원해졌다..
바르바라가 마카르에게
오, 나의 친구여! 불행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불행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서로 피해야 합니다. 당신의 소박하고 고독한 생활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불행을 제가 당신께 안겨준 겁니다.
당신의 성격은 정말 이상하군요! 당신은 모든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때문에 당신은 언제나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거예요.
마카르가 바르바라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변덕스러워요. 태어날 때부터 그렇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지금은 훨씬 더 통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성격이 까다롭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남과 다르게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끔흘끔 곁눈질하고,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누가 자기 말을 하진 않는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곤두세웁니다. 예컨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볼품이 없을까?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느낄까? 이쪽에서 보면 어떻고, 저쪽에서 보면 어떨까? 바로 이런 거죠.
최근에 예멜랴가 말하길, 누군가 그를 무슨 자선 단체에 등록시켰는데, 은화 10코페이카를 받을 때마다 어떤 공식적인 심사 같은 걸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에게 10코페이카를 거저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경한 대가로 돈을 지불한 겁니다. 요즘엔 선행마저 어쩐지 이상하게 이루어집니다... 아마 항상 그래 왔을 겁니다.
바로 경험을 통해 아는 겁니다. 가령 가난한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신사가 어딘가 레스토랑으로 걸어가면서 "저 가난한 관리는 오늘 무엇을 먹을까? 나는 소테 파피요트(고기, 채소 등을 소스와 함께 종이에 싸서 조리하는 요리)를 먹겠지만 저 가난한 관리는 버터도 넣지 않는 카샤(쌀, 보리 등을 끓여서 만든 죽)를 먹을 테지"하고 혼잣말한다는 걸 알죠.
도대체 무엇이 나를 망가뜨렸을까요? 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 모든 삶의 불안, 온갖 쑥덕거림, 웃음, 농지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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